김득신....

EBS 지식채널e 에서 우연히 보게되었다.
김득신....
잠간동안 전체 2~3분 분량의 프로그램중 후반부를 보았을뿐인데 너무나 인상깊어 인터넷으로
다시보기를 통해 전체를 보았다.
아래는 인터넷에서 찾은 그에 대한 글이 있어 발췌했다.

그는 조선 중기를 살다간 엽기적인 노력가로서 엄청난 독서가이다. 하지만 타고난 둔재였던 탓으로 깨달음이 남달리 적었다. 하지만 그는 그칠줄 모르고 읽고 또 읽었다. 오히려 무식하다고 할 정도였다. 당시에도 꽤나 유명했었던 모양으로 당시의 지우들이 그의 노력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1억1만3천번의 독서

그는 어렸을 적부터 머리가 아둔했던 탓인지, 엄청난 열정으로 책읽기에 몰두하였다. 한마디로 독서에 벽(편벽됨)이 있었다. 그의 독서량은 실로 엄청났다.

<독수기>에 그의 일화가 남아 있다.

<백이전>은 1억1만3천 번을 읽었고, <노자전><분왕><벽력금><주책><능허대기><의금장><보망장>은 2만 번을 읽었다...(중략)... <용설>은 2만번, <제약어문>은 1만 4천번을 읽었다....(중략)
<백이전><노자전><분왕>을 읽은 것은 글이 드넓고 변화가 많아서였고, 유종원의 문장을 읽은 까닭은 정밀하기 때문이었다.....(하략)

대략 이런 식이다. 이 때 1억은 지금의 10만을 가리킨다고 한다. 만번 이하로 읽은 것은 아예 꼽지도 않았다고 하며, 정독하여 읽을 때마다 책에 표시를 해 두었다 한다. 미련스럽다기 보다 눈물겹다 하겠다. 그의 엽기적인 독서행각에 정말 입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 그의 아둔함이 이와 같았다.

그가 태어날 때 그의 아버지 김치가 꿈에 노자를 만나 그의 호를 몽담으로 짓고 꽤나 기대를 했었던 모양이었으나 그의 머리가 너무 나빠 10살에야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나 진척이 없었다. 주위에서 저런 둔재가 있느냐고 혀를 차도 그의 아버지는 오히려 " 나는 저 아이가 저리 미욱하면서도 공부를 포기하지 않으니 그것이 오히려 대견스럽네. 하물며 대기만성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의 아버지의 노력 또한 눈물겹고 진한 부성애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부친의 노력으로 김득신은 드디어 글 한편을 부친에게 지어 올렸다. 그의 나이 스무살 때였다. 아버지도 감동하고 김득신도 감동했다. 이 후 더욱 정진하여 뒤늦게 과거에 급제, 성균에 들어간 이후에도 이야기를 주고 받을 때나 혼자 있을 때나 식사할 때나 항상 글을 외었다. 밤에는 늘 책을 머리맡에 두고 잤다.

하지만 그의 타고난 둔재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으로 그에 대한 재미난 일화가 전한다.

말을 타고 하인과 함께 어느 집을 지나다가 글읽는 소리가 들려 말을 멈추고 한참 동안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 글이 아주 익숙한데, 무슨 글인지 생각이 안나는구나."
하인이 올려보며 "부학자 재적극박 어쩌고저쩌고는 나으리가 평생 맨날 읽으신 것이니 쇤네도 앍겠습니다요. 나으리가 모르신단 말씀이십니까?"
김득신은 그제서야 1억1만3천번 읽었던 <백이전>인 것을 알았다. 하인도 지겹게 들어 줄줄 외우던 백이전이다. 이제 이 정도면 엽기다.

그에 관한 재미난 일화가 또 있다.
그가 한식날 하인과 길을 가다가 5언시 한구절을 얻었다. 그 구절은 '마상봉한식'(말 위에서 한식을 만나니) 이었다. 그가 한참동안이나 대꾸를 찾지 못해 끙끙대자 하인이 이유를 물으니 대꾸를 못찾아 그런다 했더니 하인녀석이 대뜸 '도중속모춘'을 외치는 것. 즉 '말위에서 한식을 만나니, 도중에 늦은 봄을 맞이하였네!!"로 그럴싸한 구절이 되었다. 깜짝 놀란 김득신이 말에서 내리더니, "네 재주가 나보다 나으니, 이제부터 내가 네 말구종을 들겠다."하니 하인 녀석이 씩 웃으며 "나으리가 날마다 외우시던 당시가 아닙니까?" 하였다. 김득신 왈, "아 참 그렇지!"
엽기 맞다.

또 한번은 그가 친구들과 압구정에 모여 시를 짓고 논 일이 있었다. 그는 하루 온종일 생각하다가 날이 저물 무렵,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오늘 겨우 두 구절을 얻었네만 아주 훌륭하다네"하니 친구들이 "뭔가?"하니 김득신 왈 " '삼산은 푸른 하늘 밖에 반쯤 떨어지고, 이수는 백로주에서 둘로 나뉘었네'일세. 멋지지 않은가?" 하니 친구들이 웃으며 "이게 그대의 시인가? 이것은 이백의 시 <봉황대>일세." 하니 김득신은 풀이 죽어 탄식하며, "천년 전 적선이 나보다 먼저 얻었으니 석양에 붓 던지고 서루를 내려오네." 라고 하니, 듣던 친구들이 웃다가 쓰러졌다. 하도 많이 읽어 자신이 지은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이 정도이고 보면 독서광을 넘어 '책과 한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한 아둔함에도 이에 굴하지 않고,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여 책과 한몸이 되었으니 정말이지 감탄할 만하다. 실로 그의 삶의 행적은 바르고 올곧았으며, 성품이 따뜻했던 모양이다.

* 반듯했던 삶의 자리

<기록문>에 그의 반듯했던 삶의 흔적이 역력하다.
김득신이 그의 친구 집에 머물며 공부를 하고 있었다. 친구는 출타 중이었다. 그런데 친구 홍석기의 종이 솥을 들고 들어오길래 김득신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 종이 대답하기를 "빚 받을 집에서 뽑아 왔습니다." 김득신은 일말의 주저함이 없이 책을 거두어 돌어가려 하자 마침 홍석기가 들어오다 그 광경을 보고 무슨 일이냐고 두번 세번 묻자 그제서야 그 일을 말하였다. 홍석기가 "이것은 내가 모르는 일이다. 내 집에 과부가 된 누이가 있는데 혼자 한 일이다. 실로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간곡히 사과하여 그제서야 그만 두었다.

또 이런 일화가 있다.
김득신은 친구 구장원과 서로 사흘 걸리는 거리에 살았는데 몇년전에 년월일을 정하여 서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그런데 마침 비바람이 크게 불고 날이 늦은지라 구장원은 김득신이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에 과연 그가 이르렀다. 그 독실함이 이와 같았다.

둔재에도 불구하고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그의 열정적인 성품, 빚 대신 가난한 집 솥을 뽑아 오는 친구의 각박함을 보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친구의 집을 박차고 나왔던 따뜻한 성품, 그 잘 잊어버리는 사람이 몇 년 친구와의 약속은 잊지 않고 지켰던 독실한 성품이었기에 그의 친구들은 그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그 후손들도 또한 본을 받으려 하였다. 이는 몇 백년이 지난 우리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그의 가르침은 아둔한 머리를 탓하며 노력을 게을리하였던 것은 아닌지 반성케 한다. 그가 삶 전체로써 던져준 가르침 앞에서 저절로 숙연해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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